4월 일기
두명의 얼굴없는 가수 공연
4/11 tuki
J-POP을 좋아하는 친구 덕분에 함께 콘서트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연은 츠키(tuki)라는 재패니즈 여고생 싱어송라이터였습니다. 무려 장원영마냥 중학교 3학년때 데뷔했다고...
회사 동기들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가수였는데, 이번이 첫 해외 투어라고 하네요.
타이베이-서울-홍콩 순으로 진행되었고 서울은 4월 11~12일 양일 열렸습니다.

사실 말이 서울이지 공연은 영종도에 있는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렸습니다.
인스파이어 리조트에 속한 국내 최대 실내 전문공연장이라고 하네요. 굉장히 넓었습니다.

장난 아니었습니다. 왜 다들 콘서트를 보러 가는지 이해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어폰 꽂고 듣는 거랑 생음악으로 듣는 것, 확실히 차이가 굉장합니다.
공연 끝나고 저 포함 세명이서 돌아가는 길 같은 노래를 틀어도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더군요.
그 이후로도 몇주간 후유증으로 노래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4/18 amazarashi
두 번째 공연은 게임 친구랑 둘이서 다녀왔습니다.
이 양반은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던 가수였는데, 올해 내한을 왔더라구요.

공연 장소는 서울 올림픽공원에 있는 올림픽홀로, 인스파이어 아레나보다는 규모가 작았습니다.
그래도 굿즈 사느라 2시간이나 줄 섰다는 사실..

옆동네 KSPO DOME에서 NCT 아이돌 공연이 있었는데, 거기도 인파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외국인 팬들이 굉장히 많았더라구요. 이것이 K-POP인가..

11일 공연과는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습니다.
tuki 공연은 같이 환호하고 참여하는 공연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음악 감상회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박수치고 떼창하는 것이 아닌, 조용히 가사를 음미하며 감상에 젖어드는 공연이었습니다.
amazarashi 노래가 시적이기도 하고, 공연 문화가 원래 이렇다고 하네요. 전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더 좋았습니다.
참고로 일본 가수들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지만, 공연 중 사진촬영을 엄금합니다. 사진 찍으려면 공연 전/후에 찍으세요!
4/24~26 울릉도/독도 여행
부모님의 울릉도 출장이 있어서, 같이 따라갔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가보겠습니까

울릉도로 가는 방법은 강릉/묵포/포항에서 배를 타는 방법뿐입니다. 몇년 뒤 공항이 생긴다고는 하네요.

이렇게 생긴 배를 타고 4시간동안 갑니다.
하필이면 이날은 파도가 세서 배멀미 하는 사람들이 많았더라고요.
멀미가 걱정이시면 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큰 배를 타는 방법도 있습니다.

배에서 찍은 울릉도.
저 깎아내린 곳이 공사중인 울릉공항입니다. 부모님 출장 목적도 저기
배 승객들을 보니 거의 대부분 패키지 관광이던데,
저 공항이 생기면 울릉도에 개인 관광객이 많이 올 것이라 하시더라구요.

마침 날씨가 좋아, 우리땅 독도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독도행 배는 기상악화로 결항되는 일이 잦다 하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독도에는 사람보다 갈매기가 훨씬 많습니다. 칠x사이다 광고가 거짓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5G 데이터도 울릉도보다 빵빵히 터집니다. 모 통신사 광고도 거짓이 아닌걸루??

울릉도는 '나리 분지'라는 곳을 제외하곤 전부 가파른 산지입니다. 자동차도 SUV가 아니면 언덕길을 못 올라요
이런 곳에 1만명 가까이 산다는 사실에 경외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낚시하는 사람들
언제 또 다시 못가볼 귀중한 경험이였습니다.
개인이야기
캄보디아와 미얀마
3월 근황일기
Zomboid 서버 에러 해결을 포함한 일상, 각종 교양
kreator-kaebal.github.io
지난 3월 일기에서 캄보디아 록을 이야기하다 킬링필드까지 나간 적이 있었는데,
국내에는 캄보디아 범죄도시가 유명해서 그렇지, 미얀마(버마)의 범죄도시가 진짜라고 합니다.

여기도 근현대사가 마찬가지로 비극 그 자체인데, 버마는 원래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였습니다.
이후 2차대전이 발발하고 버마인들은 일본(!)의 도움을 받아 무장 독립운동에 나섭니다.
일본의 도움을 받았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한데, 2차대전때 동남아시아는 일본군과 영국군의 격전지었기 때문입니다.
버마의 국부 아웅 산(Aung San) 장군도 한때 일본군 소속이었죠.
아무튼 식민지 버마는 일본의 지원으로 독립투쟁을 하고 대전 초 일본은 버마를 점령하지만,
잘 알려지다시피 일본군을 겪은 버마인들은 영국령 시절이 다시 보니 선녀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전 말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아웅 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반대로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1947년 버마는 독립합니다.

식민지 이전부터 버마는 큰 내분을 겪고 있었는데, 바로 소수민족 갈등이었습니다.
100여 개의 소수민족이 버마에 거주 중이며, 이들은 주류인 버마족에 대항해 분리운동을 벌여 왔죠.
식민 지배한 영국은 이 사실을 잘 알고, 혐성국 특기인 갈리치기 전략(Divide And Rule)을 활용해 버마족들의 독립 의지를 약화시켰습니다.
바로 억압받던 소수민족들에게 특권을 부여해, 버마족을 역으로 지배하도록 한 것이었죠.
그래서 버마가 독립했을 때, 이 갈등이 다시 폭발했습니다.
이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아웅 산으로, 그는 버마족과 소수민족 모두에게 존경받는데다가 스스로도 버마 통합을 평생의 숙원으로 삼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웅 산이 1947년 암살당해버립니다. 배후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버마 독립에 반대한 친영 매국노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구심점이 사라져버린 버마는 아웅 산의 동기였던 우 누(U Nu) 총리 하에 어떻게든 안정을 찾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녜 윈(Ne Win) 장군의 쿠데타로 이뤄지지 못했죠.
녜 윈-탄 슈웨(Than Shwe)로 이어진 버마 군정은 버마족-불교도 근본주의를 내세워 소수민족뿐 아닌 버마족까지 잔혹하게 탄압합니다. 웃긴 건 녜 윈도 아웅 산 및 우 누와 함게 버마 독립에 앞장섰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군정이 능력이라도 좋으면 망정이지, 흔한 독재자 루트를 타 무능하기까지 해서
러시아처럼 고도의 자치권을 주거나, 중국처럼 초강력 공권력으로 찍어누를 힘도 없다 보니
소수민족들은 자체적으로 무장을 갖추는 등 점차 군벌화되었고, 이게 바로 버마 범죄도시의 시작입니다.
무장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돈을 쉽고 빠르게 버는 방법은 역시 마약 장사니까요.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도 자주 나온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입니다. 쿤샤(Khun Sa)를 비롯한 소수민족 군벌들은 물론이고 버마 정부군까지 여기서 마약 재배를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무법지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UN 지정 최빈국으로 고통받던 버마에도 저항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들어 아웅 산 장군의 딸 수 치(Suu Kyi)의 지휘 아래, 버마인들은 반군부 시위에 나섭니다.
1988년 최대 규모의 항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낸 결과, 군부가 시민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수 치를 어떻게든 없애고 싶어한 군부였지만 아웅 산 장군의 딸이기까지 하니, 군부에서도 그녀를 함부로 건들 수 없었죠.
수 치는 이후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2015년 이뤄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 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가 압승, 정권이 교체되며 버마 군정의 끝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버마는 의원내각제 국가입니다)

하지만 수 치 정부도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소수민족이었습니다.
가장 큰 사건이 바로 2017년 로힝야족 학살 사태였죠.
로힝야족은 원래 방글라데시에 살던 민족으로, 식민지 시절 영국이 버마에 정착시켰습니다.
이들은 영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다른 민족들을 탄압했고, 당연히 버마족을 포함한 모든 민족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죠.
로힝야 학살 사태의 주동자는 군부임이 드러났지만, 수 치도 민주투사이기 이전에 버마족이고
로힝야 탄압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취소하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죠.

그리고 2021년,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총사령관 휘하의 군부는 기습 쿠데타를 일으켜 수치 내각을 붕괴시킵니다.
쿠테타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간단한데, 정부가 군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은 문민통제의 원칙 하에, 민간인인 정부 아래에 군대가 있습니다.
혹은 북한과 중국, 베트남과 같은 공산 국가들의 군대는 국가의 소유가 아닌, 당의 소유이죠.
그런데 미얀마는 이게 아니었습니다. 군과 정부가 따로 놀고 있었어요.
정부에서 군 사령관을 임명하는 게 아닌, 군대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수뇌부를 구성합니다.
심지어 헌법에 국회의 일정 비율을 현직 군인으로 구성하라는 조항까지 있습니다.
버마군은 거기에 각종 산업을 독점하며 경제권까지 쥐고 있었습니다.

꽤 최근의 사건이라 많이 알고 있겠지만 시민들은 쿠데타에 대항했고, 흘라잉 사령관의 군부는 88년 때처럼 잔혹하게 진압합니다. 수 치도 체포되어 가택연금형에 처하죠.
버마군은 위에서 말했듯이 자기들만의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 나치가 유태인 보듯이 민간인들을 자기들과 다른 '종족'으로 여겨 민간인 학살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정권을 뺏긴 민주주의민족동맹은 망명 정부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of Government)를 구성해 반군부 무장 투쟁에 나서고, 각 지역의 소수민족 군벌들도 서로 각축전을 펼치게 됩니다.

미얀마 범죄도시 문제가 이 때부터 심해진 것입니다. 나라가 전쟁터이다 보니 무법지대가 다수 생겨나
코로나 범유행과 정부의 소탕 작전으로 일거리를 잃은 범죄조직(특히 흑사회)이 여기에 흘러들어와 각종 인신매매와 사기 센터를 짓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군부, 반군 가릴 것 없이 비호를 받고 자기들만의 '왕국'을 구성합니다.
그나마 캄보디아는 공권력 자체는 안정적이니 범죄도시 문제가 빠르게 밝혀질 수 있었지만, 여기는 그런 소식조차도 받을 수 없는, 인외마경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근황글에 쓸 게 아닌, 따로 연작 시리즈를 구성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ㅎㅎ